이것만은 바꾸자 5.판치는 욕설·비속어
청소년 73.4% 대화·문자메시지 등 매일 욕설 사용
인터넷 대중매체·기성세대 저속언어 등 악영향끼쳐
고운말쓰기·건전한 취미활동 등 범사회적 운동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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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사회에 언제부턴가 입에 담기조차 힘든 쌍스러운 욕설이 난무하고 있다. 특히 이런 저속언어는 갈수록 심해져 최근엔 학생들에게까지 확산되고 있어 학교와 가정에서의 교육이 시급한 실정이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내용과 상관없음. /임문철 기자 35mm@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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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주부 최모(38·여·광주광역시 동구 동명동)씨는 최근 초등학교 3학년 딸아이가 친구들과 나눈 대화를 듣고 충격에 빠졌다.
초등학교 여학생들 사이의 대화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쌍스러운 욕설과 알아들을 수 없는 은어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최씨는 “듣기에도 민망한 ‘0나’, ‘찌질이’, ‘X자식’ 등의 욕설과 함께 ‘깝치다’, ‘죽빵치다(집단구타)’, ‘헐(감탄사)’, ‘레알(정말) 등의 비속어를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했다”며 “우리때도 욕설과 비속어가 있었지만 이 정도까지 심하진 않았다”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사회에 언제부턴가 입에 담기조차 힘든 쌍스러운 욕설과 국어사전에도 없는 비속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특히 이런 저속언어는 갈수록 심해져 최근엔 나이 어린 초등학생들에게까지 확산되고 있어 학교와 가정에서의 교육이 시급한 실정이다.
여성가족부와 교과부, 문화부가 청소년의 욕설 등 언어실태를 조사.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의 73.4%가 매일 욕설을 사용하며, 친구간 대화시 5%, 문자사용시 7% 정도가 욕설이나 유행어 등 불건전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욕설의 사용 동기에 대해서는 50% 정도가 ‘습관’이라고 응답하면서도 욕설의 의미를 아는 청소년은 2%에 불과했으며, 욕설 대상은 친구가 70.3%를 차지했다.
또 청소년 1명이 대화 중 욕설을 내 뱉는 간격은 75초로 나타났으며, 청소년 10명 중 1명 꼴인 91.4%가 매일 한 번 이상 욕설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욕설·은어 사용 실태
고등학생 김모(17)군은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욕이나 은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왕따를 당하기 일쑤”라며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인터넷 등을 통해 현재 인기가 높은 욕이나 은어를 살펴본 뒤 대화에 써먹고 있다”고 말했다.
김군은 이어 “그래도 남학생들은 욕을 많이 한 편 아니다”며 “오히려 여학생들이 온라인 게임이나 인터넷에서 더 심한 욕을 자연스럽게 사용한다”고 귀띔했다.
광주 A여고 국어교사 이모씨는 “학생들 대부분이 교사와 이야기 도중에도 무의식적으로 ‘0나’, ‘X새’, ‘X팔려’ 등의 비속어를 스스럼 없이 사용하고 있다”며“처음엔 주의를 주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어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그냥 넘어간다”고 말했다.
디지털 미디어가 활성화된 후 청소년들의 56%(온라인 게임 52.2%, 인터넷 44.6%, 휴대전화 33.8%, TV 10.6%)가 욕설을 경험하고 신조어나 욕설, 폭력적 언어를 모방하는 사례가 많아 디지털 미디어가 청소년들의 언어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정·학교·사회 환경 복합작용
이처럼 요즘 학생들이 저속한 언어를 사용하는 데는 가정과 학교, 사회문화적 환경 요인이 복합적인 작용을 하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가장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부모의 언어폭력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들 수 있다.
또 학업 스트레스도 청소년들의 언어 사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특히 저소득층과 대도시에서 자란 청소년들이 비속어나 공격적 언어 표현 등을 많이 사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8월 국립어학원의 의뢰를 받은 장경희 한양대 교수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가정환경 요인 가운데 ‘부모의 언어폭력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초등학생과 중.고등학생의 공격적 언어 표현과 비속어, 은어, 유행어 사용을 모두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중.고등학생의 경우 부모가 자녀의 거친 말을 제재하고 ‘가족 응집성’이 높을 때 공격적 언어 표현과 비속어 사용이 줄어들었다.
장 교수팀은 “아이가 거친 말을 사용할 때 부모가 이를 지적하며 제지하는 등 정서적 지지도를 높이는 것이 공격적인 언어와 비속어 사용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라고 분석했다.
▶건전한 언어 사용을 위해선
욕설이나 비속어를 사용하면 자신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대인관계에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 청소년 스스로가 이를 자각하고 고운말을 사용하도록 노력하는 사회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학부모 김화정(40·서구 풍암동)씨는 "요즘 학생들이 사용하는 언어나 문자메시지를 보면 낯 부끄러워 입에 담을 수조차 없다"며 "초등학교에서부터 고운말 쓰기 등에 대한 교육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들이 고운말을 쓰도록 하기 위해서는 인터넷 등 각종 매체에 대한 규제와 함께 자율적인 정화가 요구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각종 매체 종사자를 대상으로 언어와 청소년 보호교육을 실시하고 건전한 인터넷 문화조성을 위한 사회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
황수주 광주북구청소년상담복지센터 소장은 “경쟁 위주의 입시제도와 권위적인 한국사회에서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억눌린 감정을 욕설과 비속어를 통해 해소하는 등 성장세대에게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출구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청소년들의 올바른 언어사용을 위해 학교당국과 경찰서, 지자체, 전문가 등이 모여 건전한 취미생활과 올바른 인터넷문화 확산 등의 사회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정응래 기자
jer@namdonews.com